[완주신문]24절기 가운데 열네번째 처서가 지났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말처럼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들어서는 계절이다. 농사로 치면 이 무렵의 충만한 햇살과 맑은 하늘이 한 해 결실을 좌우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도 처서의 문턱에 서 있다. 봄·여름 내내 달궈진 완주‧전주 행정통합 논란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곧 판가름 날 것이다.
1997년 완주·전주 행정통합 논란이 시작된 이래 30여년 간 완주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인구소멸의 역풍 속에서도 유입이 이어져 지난 5월 10만 인구를 돌파했고 수소특화 국가산단과 과학·테크노밸리2산단 등 370만평 규모의 산업단지 집적화로 새로운 성장축을 세웠다. 교육·정주·일자리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함께 높아지며 ‘지방소멸을 넘어서는 완주’라는 희망의 브랜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행정통합에 대한 완주군민은 일관되게 반대를 표명해 왔다. 2024년 1월 전북일보·KBS 조사에서 완주군민의 55%가 반대, 같은 해 8월 통합추진단체가 실시한 대면조사에서는 66%가 반대, 2025년 7월 케이저널 65%, 8월 완주신문 71% 등 네차례 여론조사에서 모두 통합 반대 여론이 높았다. 이처럼 민심이 분명한데도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행정력이 낭비되고 주민 간 빚어지는 갈등과 반목의 사슬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비단 2025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완주군민으로서는 무려 30년을 끌어온 싸움이다. 이제는 정부가 답할 시간이다.
계절의 흐름은 가차 없고 지극히 공정하다. 처서의 경계에서 자연이 말한다. 좋은 열매를 원한다면 하늘을 맑게 하라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한다. ‘래디컬 민주주의’의 저자, 정치학자 러미스의 표현처럼 민중의 권력이 있는 곳에 민주주의가 있다.
완주군민의 압도적 반대야말로 주권자의 목소리다. 행정안전부는 통합 논란을 끝낼 책임 있는 결론을 하루빨리 제시하길 바란다. 더 이상의 지연은 책임회피이며 정부에 대한 신뢰에 상처를 내는 일일 뿐이다. 완주군의회는 민주주의의 길에서, 우리 아이들의 내일과, 골목의 불빛과, 산과 들녘과, 만경강 곁을 흘러가는 바람을 지키며 마침내 완주에서 완주(完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