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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주민투표, 민주주의를 지키는 제도적 장치가 돼야

[완주신문]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의 의사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우선 기준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완주와 전주 간 통합 논의에서 드러난 현실은, 현행 제도가 오히려 주민 갈등과 행정적 혼란을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주민소환제와 지자체 통합 절차의 차이다.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해임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유권자 15%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발의가 가능하다. 이는 사회적 합의와 충분한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타당하다.

 

하지만 지자체 통합은 단순히 행정 책임자의 교체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 기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1%의 서명만으로도 통합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주민소환보다 낮은 문턱으로 지역 존립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지방자치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결함이다.

 

지방자치단체 통합은 주민의 삶과 지역 공동체 전반에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현행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45조 제2항은 주민투표 청구 요건을 주민투표권자 총수 100분의1 이상 50분의1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실제 대통령령은 최저선인 ‘50분의1’을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일정 수 이상의 주민만으로도 지방시대위원회에 통합 건의를 할 수 있는 구조적 허점이 생겨났다. 일부 집단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계산에 따라 통합 논의가 너무 쉽게 촉발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완주·전주 사례에서 서명부 전달 당시 완주군 유권자 약8만4654명의 50분1인, 불과 1693명 이상의 서명만으로도 주민투표 절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고작 50분1의 주민서명으로 주민투표 절차가 개시되면서, 지역사회는 찬반으로 극명하게 분열되고, 막대한 행정력과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제도가 오히려 주민 자치의 본뜻을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촉발된 통합 논의가 단순히 행정적 논쟁을 넘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통합 여부가 지역 주민의 실질적 필요보다는 정권 교체기, 선거 국면에서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좌우된다면, 지방자치의 근간인 ‘주민 중심 원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제도적 보완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통합 건의 요건을 주민투표권자의 20% 이상으로 상향해 사회적 합의와 충분한 공감대 확보를 전제로 논의가 시작되도록 해야 한다. 독일, 일본 등 지방자치 선진국도 지역 통합이나 분리와 같은 중대한 결정은 주민투표뿐 아니라 사전 공론화 과정에서 높은 참여율과 동의율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공론화 절차를 의무화하여 주민들이 충분히 토론하고 숙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 공청회나 숙의토론회 결과를 건의서에 첨부하도록 하고 통합 논의가 충분한 논의와 숙고를 거쳤음을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

 

셋째, 서명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전자서명 도입과 행정기관 검증을 통해 서명의 위·변조와 조직적 동원을 방지하고 건의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중앙정부와 국회도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특히 특별법 제정과 연동되는 통합 논의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재정 지원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간 이견과 지역 간 이해충돌이 첨예하게 드러난다. 이는 결국 법안 표류와 예산 지연으로 이어지고 주민들의 갈등만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주민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그 절차가 허술하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독이 되기도 한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남용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

 

주민 참여는 보장하되, 그것이 지역 공동체 전체의 의사를 진정으로 반영하는 절차가 되도록 법적 장치를 정비해야 한다. ‘쉬운 통합’이 아니라 ‘정당한 통합’이 필요하다.

 

주민의 충분한 참여와 숙의를 기반으로 지역 공동체가 갈등이 아닌 합의를 통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법 개정을 통해 주민의 목소리가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게 정책에 반영될 때 지방자치의 진정한 가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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