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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 사업을 건 최후통첩 게임

[완주신문]‘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이란 무조건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한다는 이론이다. 즉 우리의 풍요로운 삶은 농민이나 양돈업자의 자비심 또는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의 은혜로운 성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그들의 자기 이익 추구가 우리를 입히고 먹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현대 자본시스템이 이 사상을 이어받았다고 본다. 이 논리에 따를 경우 법적 한계 내에서 발휘되는 이기심은 타당하다. 하지만 이기심만으로 인류의 사회문화 현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근래 비봉면에서 불거진 양돈 농장 갈등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이론을 방증하는 사례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비봉면의 폐 양돈장을 매입했다. 기왕에 있던 양돈장이니 만큼 인허가 면에서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자금을 투입했다. 환경 부분에 문제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하자 없는 사업체로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봉면 주민들은 양돈농장 재가동 반대 시위를 연이어 열었다.

 

게다가 완주군은 지난해 말 해당 회사의 양돈 농장에 ‘불허가’ 처분을 내림으로써 군민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업체는 양돈장 재가동에 필요한 해결책을 찾으려 여러 차례 타협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결국 회사는 지난 2월 완주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지난 4월 주민들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지난 5월초 손해배상 민사소송까지 청구하며 자사의 이익 수호에 법의 힘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이 선택이 자사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을까?

 

독일의 베르너 구스 연구팀은 ‘최후통첩 게임’ 실험을 통해 새로운 자본윤리를 제안한다. 

 

‘최후통첩 게임’ 실험자는 제안자와 응답자로 피실험자를 구성하고, 제안자에게 10만원(혹은 더 큰 금액도 가능함)을 주며 응답자와 나누어 갖도록 지시했다. 이때 제안자에게 응답자와 어떤 비율로 돈을 나눌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만, 응답자가 그 제안을 거절할 경우 두 사람 다 한 푼도 가질 수 없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인간관에서 보면, 응답자는 0원이 아니면 무조건 이익이 됨으로 제안자를 따르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도 분배 금액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거절한 응답자가 있어서 돈을 받지 못하는 그룹도 발생했다. 그 중에는 제안자가 응답자에게 준 돈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합의가 결렬된 팀도 있었다. 그냥 받으면 무조건 이익인데, 왜 불공정을 따질까? 

 

이 실험은 인간본성에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으려는 이기심 외 타인의 행복에도 관심을 갖는 속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윤리적 소비자들은 값싸고 질 좋은 물건만을 무조건적으로 선호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값이 싸고 좋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인 과정을 거친 물건에는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무조건 받으면 이익이 되지만, 불공정을 이유로 이익을 포기하는 ‘최후통첩 게임’과 동일한 맥락이다. 윤리적 소비자들은 기업 경영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지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바람 좋은 비봉면, 그곳 주민들은 아름다운 정경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악취와 수질오염 등 양돈 사업 피해에 시달려 왔다. 이는 2011년 폐수 무단방류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극에 달했다. 결국 완주군이 해당 업체의 가축분뇨배출시설을 취소하면서 시설물이 방치된 상태로 상황이 일단락됐다. 

 

그간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쳤고, 2019년 초반에 부여육종에서 이 시설을 매입하면서 돼지농장 재가동을 준비했다. 이에 비봉면 주민들은 지난날의 악몽을 되풀이 할 수 없다며, 돼지농장 재가동을 막고 나섰다. 업체가 아무리 최신 시설을 갖춘다 해도, 양돈장이 운영되는 한 인근 주민들은 그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결의(決意)한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살필 줄 아는 윤리적 소비자들은 비봉면 주민들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재화 수원지를 고수하려는 기업권력에 저항하며 삶의 토대를 지켜내야만 하는 비봉 주민들에게 이 봄날은 잔인하기만 하다. 어떻게 해야 건강한 자본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두 갈등 집단을 ‘최후통첩 게임’ 실험에 대입해 보면, 돼지농장을 제안자로 설정하고 비봉면 주민을 응답자로 가정해보자. 사회적 재화를 분배해야하는 상황에서 농장이 비봉면 주민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을 제안해야 두 집단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응답을 할까? 현대 소비심리를 분석할 줄 아는 자본가라면 ‘공정한 분배’를 통해 지역민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자본윤리를 모색할 것이다. 

 

부여육종은 이 선택이 최후의 게임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값싸고 질 좋은 돼지고기보다 이타적 기업에 더 관심 있는 소비자들이 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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