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지난해말 완주군의회의 예산심의 모니터링을 한 주민들은 “기초의회 무용론을 떠올릴 정도로 위기에 처한 지방의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방의회는 지역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주민이 직접 뽑은 대의기관으로, 자치단체의 정책을 결정한다. 이를 위한 조례 제정은 물론이고 예산 의결, 주민부담과 주민의 이해관계 등 자치단체의 주요 정책 방침에 최종적으로 힘을 싣는다. 또한 주민 대표기관으로써 군 집행기관의 독주를 견제하는 지방자치단체 통제기능을 행사하는 등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한다. 이런 특징들을 고려할 때 군의회를 움직이는 군의원은 지역민의 연장된 신체와 같다. 그럼에도 군의회의 예산 심의에서 아무런 질의 없이 예산안을 통째로 통과해주는 부서도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형식상 두서너 개의 엉성한 질의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재난에 처한 사람들을 지원할 예산이 제대로 편성돼 있는지 따져 묻는 의원은 없었다. 주민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공장과 축사의 악취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예산의 적절성을 확인하는 의원도 없었다. 심지어 백억원짜리 대규모 개발사업, 행정복지센터 등의 건축사업들의 규모와 예산 측정에 대한 관심마저
[완주신문]“지도자들 그 누구도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데, 나라를 구하겠다고 죽음의 자리에 선뜻 나선 이들이 있었다.” 최근 본지에서 손안나 작가가 쓴 글의 대목이다. 이 문장에서 지칭한 ‘이들’ 중 대표적인 존재가 임진란 웅치・이치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 황박이다. 그는 이 땅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기를 바쳤기 때문에 호남을 수호 할 수 있었다. 이런 전과(戰果)를 고려하여 그는 영웅이라는 것이 손 작가의 견해다. 일반적으로 영웅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 신념과 자기 행위를 일치 시킬 수 있는 영웅의 출현은 ‘도덕적 선’의 현시로 볼 수 있다. 난세는 잦지만, 어느 시대나 자기 일신의 안위를 버리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근현대 역사 흐름에서 사회 혼란이 야기되면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한 존재’들은 대체로 자기 일신에 몰두했다. 그들은 시대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역량을 활용해 자기 가문의 명예와 재산 축적에 나섰지, 난세를 구하는 영웅 되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러니 임진란으로 고통에 처한 백성들을 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절한 의병대장
[완주신문]“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가 무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모른다.” 얼마전 완주를 방문한 어떤 대선 후보자(이하 A)의 말이다. 이 논지에 따르면 자유가 무엇이건 간에 이를 인식하고, 이에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만이 배운 사람이다. 또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를 모르니 자유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A가 꿈꾸는 이상세계는 고대 그리스식의 신분제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가 가정한 사회 속에서 생산을 담당한 노예는 생각하기를 금해야한다. 정치영역을 점유한 엘리트 계층이 숙고를 통해 정의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예는 오직 생산에 열중하는 것이 옳다. 그들은 선택과 책임을 다할 지적 능력 함양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생산에 필요한 숙련을 익혀야한다. 그러니 이들에게 자유에 대한 인식 따위가 왜 필요하겠는가? 라는 것이 A의 내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보편적 의미에서 통용되는 자유의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란 무엇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주권자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에 보면 자유는 천부인권에 해당
[완주신문]농어촌공사의 대둔산 ‘장선지구 다목적 농업용수 개발사업’이 수년째 지연되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이 사업은 수몰민 이주대책조차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그밖에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들이 덧붙여지면서 10년 계획 사업이 20년 이상 장기화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미봉, 방치되어온 이주민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제방 관련 치수사업은 수몰민과 지자체장의 의견수렴을 법적 필수 사항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번 사업을 주도한 농어촌공사는 의견수렴과정 자체를 생략했다. 이주민대책위에 따르면 농어촌공사는 주민설명회 개체는 물론이고 현장공사 감독관과 합의된 사항도 무시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공사 측은 주민들이 사업설명회를 거부했다고 공고를 냈다. 물론 농어촌공사 관계자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대체부지 개발과 관련하여 해당 주민들 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주민설명회 자체가 어려웠다고 한다. 이에 공사는 갈등의 접점 찾기에 들일 공력과 시간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주민 설명회 거부’라는 임의의 해답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제18조’의 규정에 따라 주민설명회를 생략한다는 내용을 공고했다
[완주신문]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완주군 후보자들 간에 입당원서 받기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대의정치(代議政治)가 정당정치로 전개되는 현 상황에서 정당의 뒷받침 없는 정치활동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재로 공천 없이 의회에 진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이 현대 정치 방식이니, 그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완주군을 점령한 특정 정당의 집안싸움에 휘말려든 군민들의 불편한 처지와 주류 정당에 대한 확증편향(確證偏向)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제고되어야 한다. “아는 체면에 안 해 줄 수도 없고, 또 누구에게는 해주고 누구에게는 안 해 줄 수도 없어서….” 이런 상황에서 중복 입당원서 쓰기는 기본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완주군수와 전라북도의원 외에도 완주군의회의원까지 새로 뽑힐 예정이다. 여기에 참여할 입후보자 대부분은 민주당으로부터 공천 받기를 원한다. 후보자 풍년이 든다면 수십 명에 이를 것이다. 약간 과장되게 말하자면, 완주군에서 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안면(顔面)을 깎기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수십 장의 입당원서를 제출해야한다는 의미다. 동일한 당을 향해, 각각의 다른 후보자를, 각각 지지한다는 수십 번의 읊조림을 거쳐야 삶
[완주신문]완주군 발표에 따르면 군민은 대체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발표를 수긍하기 어렵다. 지난해 코로나19는 군민의 일상을 거의 정지시키다시피 했다. 그 여파로 식료품비와 주거비용 등 물가가 급상승 했다. 이는 부채 증가로 이어져 군민의 삶을 짓누르는 상황을 초래했다. 그런데도 군민들은 삶의 만족도를 측정하는 조사 중 ‘행복’도 부문에 가장 많은 체크를 했으며, 가족관계 만족도 역시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조사대로라면 우리 군민의 ‘행복감’은 자본에서 기인한 물질적 가치에 흔들리지 않는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백과사전에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을 행복으로 정의하고 있다. 공자 역시 생활고에서 구제될 때 백성은 항상성(恒常性)을 얻고, 이를 통해 항상심(恒常心)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요컨대 민생고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백성의 행복한 정서가 형성되며, 주위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은 평정심이 생긴다는 말이다. 국가는 국민의 항상성에 기반한 정서에 민감하다. 시민의 내적 정서가 표심으로 드러나 현실의 정치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유권자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정치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
[완주신문]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할까? 집단의 힘이 강해질수록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세력을 추종한다는 사실을 경고하며 노암 촘스키가 언론의 책무로 제시한 메시지다. 그에 따르면 삶의 근저를 떠받치고 있는 상식선이 파괴될 때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 신문에서도 이런 질문을 종종 던진다. 최근 고산면 석산업체가 언론중재위원회 전북중재부를 통해 완주신문의 기사를 정정 보도할 것을 요청해왔다. 그간 완주신문은 석산 개발로 인해 인근 주민들이 겪는 고충과 이를 둘러싼 주변 갈등 상황들을 연속적으로 보도해왔다. 특히 4월 23일자 신문에는 고산석산 인근 마을에서 10년 내 발병한 암환자를 자세하게 다루어 회자되기도 했다. 이에 석산업체는 완주신문이 자사 이미지를 추락시켰다며 언론중재 신청을 했다. 석산업체는 사업기간 내내 사후환경영향조사를 통해 대기와 수질환경기준이나 생활소음·진동의 규제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결과보고서를 전북지방환경청에 제출해왔다고 한다. 요컨대 자신들은 석산개발을 하며 아무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에 근거해 자사의 석산개발 사업이 인근 주민의 암 발병과 인과 관계가 밝혀진 바 없음으로, 4월 23일자에 보도된 기사를 정정하고
[완주신문]완주군의 새마을회관 건립 지원 조례 개정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개정안 관련조례 제3조는 ‘새마을회관 건립 및 관리 등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사업비’ 추가 계획을 명시했다. 이에 ‘완주군의회 모니터링 네트워크’ 측은 이의를 제기하며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네트워크에 따르면 완주군 내에 공익적 가치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수십 개가 있고, 이들 상당수는 창립 이래 만연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자원봉사센터에 대한 예산을 반이나 삭감하고 청소년자치문화복합센터 건립비 예산도 일부 삭감했다. 그런데 완주군은 유독 새마을회에게만 사업비 지원을 넘어서 회관 건립까지 지원하려한다. 이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둔화된 봉사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네트워크 관계자들은 비판한다. 그렇다면 왜 완주군은 새마을회관 건립에 열성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군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선의다. 심각한 노령화와 희박한 인구로 분포된 완주 지역을 세밀하게 살피려면 새마을회 같은 연대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완주군 대부분 마을에는 새마을부녀회가 있다. 이들은 군의 원활한 행정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가장 밀착한 형태로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완주신문]완주군의 지난해는 다사다난했다. 환경참사 등으로 성난 민심이 주민소환제로 표출됐으며 민주당 보존 법칙을 고수한 21대 총선이 있었고, 테크노2산업단지의 폐기물매립장 백지화 지연 등의 문제도 이어졌다. 이외에도 삶을 둘러싼 오만가지의 곤란을 겪으며, 군민들은 경제와 환경을 보살펴야할 정치력의 부재(不在)를 경험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들이 발생할 것일까? <광장>에서 최인훈은 딱 잘라 ‘관료의 부패’라고 답한다. 책 속 주인공은 해방직후 한국 정치 상황을 부정부패의 도가니로 묘사한다. 청년 명준은 ‘뿌듯하고 보람을 품고 사는 것처럼 사는 법’을 찾으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렇게 정치 공간을 만났는데,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한국 정치인들은 정치 광장에 나올 때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고 한 손에는 자루를, 다른 쪽에는 도끼와 삽을 들고 입성한다. 그리고 모두의 것이어야 할 꽃을 꺾어다 저희 집 꽃병에 꽂고, 광장의 분수 꼭지를 뽑아다 자기 집에 차려 놓고서 깊은 만족감에 젖는다. 그런데 이 모습은 현실 정치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2019년 한해동안 대한민국 국회의원 73.4%가 자산을 크게
[완주신문]인간에게 집은 무엇일까? 연장선(延長線)이라는 물리적 특징을 지닌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간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공간속에서 일정한 자리를 잡고 ‘삶을 살기위해 만든 것’이 집이다. 집은 육체적 행위의 실용적 공간이며, 사회적·문화적 상황에 귀속됨을 증명하는 공간으로 한 개인이 살아가는 중심점이다. 이렇게 집은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음으로, 이것은 삶의 첫 번째 조건이다. 다만 시공간에 따라 그 형태나 가치척도가 변해왔을 뿐이다. 우리 시대는 이를 자본적 가치로 환산하여 부동산이라 통칭한다. 집과 인간의 관계를 고려할 때 국가의 부동산 정책이 시민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요한 사안이니 만큼 이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부동산을 시장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옳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국가 개입을 통한 분배정책 필요하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완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은 어느 쪽을 지지할까? 완주군 행정부는 부동산을 시장에 완전히 맡겨버리는 신자유주의자를 채택한 것인가? 삼봉신도시 개발을 앞두고, 택지 분양 단계에서 한 건설사가 3.3㎡당 900만원에 육박하는 아파트 분양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