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완주군수 주민소환제 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여러 난제들이 곪아 터졌고 많은 군민들이 더 이상 현 군수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유권자의 의도에 따라 좌우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유권자의 선택이 무조건 ‘공적이익’에 부합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유권자의 의사표명이란 것도 결국은 자기 이익과 결부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완주군수 주민소환제는 타당할까? 현 군수의 정치적 역량을 의심하는 군민들 측에서 내 세운 주장으로 첫째, 현대자동차공장 생산량 축소로 지역 경제가 퇴락하고 있다. 그간 현대자동차공장은 완주지역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는데, 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반면 광주는 ‘광주형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아자동차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지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은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완주군은 그렇지 못했다. 둘째, 완주군의 산천들이 폐기물 매립과 난개발로 죽어가고 있다. 비봉 보은매립장과 완주산단 배매산에 폐기물 매립으로 이미 환경문제가 발생했는데, 여기에 제2 산단 개발을 앞두고 산업 폐기물매립장 허가 백지화 여부 문제까지 걸려있다. 게다가
[완주신문]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살아야만 할 필연적 이유가 있을까?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한번쯤 던져 봄직한 질문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죽음을 경험할 수 없지만, 아무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없을 때 불쑥 올라오는 감정이 부조리다. 카뮈에 따르면 인간이란 우연히 내던져진 존재로 이 순간 여기에 머물만한 어떤 필연성은 없다. 다만 이 부조리를 인식하더라도 삶을 멈추지 않고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 ‘페스트’는 오랑시를 배경으로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의 모습을 그려낸 알베르트 카뮈의 작품이다. 평소 오랑시 사람들은 전형적인 소비사회 인간형으로 오랫동안 유지해온 관습을 지키며 공고한 일상을 권태롭게 산다. 그런데 이 도시에 페스트가 발병했고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게 도시민의 삶을 무너뜨린다. 병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많은 사상자를 내자, 전염을 막기 위해 도시를 폐쇄했다. 의도치 않는 생이별과 고립감은 사람들을 슬픔과 불안 속으로 밀어 넣었고 사회내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 이른다. 페스트적 위기는 다양한 반응들을 끌어낸다. 공포에 눌려 스스로 자멸하는 사람도 생겨
[완주신문]만경강 일대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산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목나무 위에는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와 멸종위기에 처한 새매가 앉아 있다. 늪 바닥을 쪼고 있는 천연 기념물 고니 건너편에는 원앙을 닮은 넓적부리가 수면을 가르고 있다. 떼 지어 다니는 물닭과 물오리떼까지 온갖 새들로 겨울철이 되면 강은 활기로 시끌벅적하다. 게다가 전세계적으로 2만 마리밖에 없다는 느시까지 겨울을 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느시는 경계심이 워낙 강해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개체들이 자기 종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한 생존투쟁 속에서 강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생명존속과 무관하게 이곳을 찾는 존재도 있다. 사람들은 취미를 즐기기 위해 만경강을 찾는다. 한 무리의 야구부대 뒤로 몇몇 마니아들이 골프 연습에 나섰다. 그 앞쪽에는 군에서 설치한 운동기구들이 있고, 천변 둑에는 자전거가 다닌다. 캠핑족의 텐트를 지나 억세풀 우거진 강물 근처로 가면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았다. 하늘에 시선을 빼깃 사람들을 좇아 고개를 드니 푸른 창공에는 패러글라이딩이 한참이다. 또 일군의 무리는 만경강 탐방을 나섰는지, 연신 막대기를 휘저으며 늪지를 향해 걸어간
[완주신문]완주산단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상용차공장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판매 부진을 비롯해 인건비 상승 등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은 근래 들어 여러 난제에 휘말리고 있다. 같은 이유로 현대자동차 완주공장 역시 생산량 감소와 함께 생산시설과 부대시설 등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그런데 최근 휴가를 통한 생산 중단에 나서며 위기설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간 다소나마 지역 균형을 이루며 완주 군민의 삶을 부양해 왔던 토대가 흔들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 전주공장의 생산량은 4만5천대에 그쳐 전년대비 5% 이상 감소했다. 이처럼 완주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의 주요 품목인 대형 트럭과 중형 트럭은 국내외 경기 침체로 생산량이 판매량을 앞도하고 있다. 이윤추구를 목표로 관련된 모든 대상을 자기 몸 불리기 수단으로 삼는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이를 고려할 때 현대자동차가 어떤 선택을 할지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역 균형 발전이나, 완주 군민의 생계유지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제 받은 것일까? 완주 현대자동차 상용차공장이 취하는 태도는 한국GM사가 군산에서 몸을 빼던 때와 유사한 모양새다. 한국GM사는 기업 손실을 이유로
[완주신문]21대 총선을 앞두고 완주지역 출마 후보자들 간에 경합이 치열하다. 이들을 둘러싼 유권자들의 논쟁 또한 뜨겁다. 이렇게 후보자 선택을 앞두고 발생하는 지역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민주주의적 의사표명의 결과로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그런데 관점디자이너들은 이 대결 구도를 ‘소지역주의’와 ‘인물론’이라는 딜레마 프레임으로 유형화 시켰다. 이 관점은 유권자의 의무와 권리를 은폐한다. 후보자 선택에서 진짜 중요한 문제는 ‘누가 정의로운 통치자인가’에 대한 고려지만, 왜곡된 프레임 때문에 유권자들의 판단력에 혼란이 생겼다. 딜레마 프레임에 입각하면 소지역주의자들은 자기 지역출신을 뽑아야 믿을만하다고 확신한다. 반면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해당 지역에서 그 인물이 이룩한 치적만을 앞세운다. 이 논리대로라면 유권자들은 한편으로는 ‘누가 자기 지역에 이익이 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이 없는 것’을 우려해야하는 상황이다. 결국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에 도취되어 어떤 후보를 선택하더라도 절반의 만족밖에 건질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 관점에 따를 경우 완주군민들은 올바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선의지가 결여됐다
[완주신문]“매일 아침 지저귀던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마을에 악마의 저주나 주술이라도 걸린 걸까요?”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 1장 ‘내일을 위한 우화’에서 던진 질문이다. 답변은 악마의 저주가 아니라, 인간이 뿌린 화학물질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이 마을을 침묵 속에 빠뜨린 것이었다. 현대인은 과학의 발달로 더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 우선 강력한 화학 살충제 발명을 통해 식량 생산량을 증가시켰으며, 전염병 확산을 막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다. 또 다양한 화학 가공물을 활용해 실용성 높은 도구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갖가지 화학물 중독 사고는 매년 수천 건에 달한다. 이런 사고는 대게 그 화학물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려하지 않거나, 자기 이익만을 앞세운 탐욕의 결과물이다. 이런 사례는 최근 이슈 된 비봉면 고화토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보은이라는 업체에서 폐기물 처리 요청을 했고, 완주군에서는 폐석산을 내주며 전체 매립에서 4%이내 고화토 매립을 조건으로 수락했다. 하지만 보은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그곳을 90% 이상 고화토로 채웠다. 이후 주민들의 고통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