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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우리지역 유권자의 새로운 전략

[완주신문]“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가 무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모른다.”

 

얼마전 완주를 방문한 어떤 대선 후보자(이하 A)의 말이다. 이 논지에 따르면 자유가 무엇이건 간에 이를 인식하고, 이에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만이 배운 사람이다. 또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를 모르니 자유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A가 꿈꾸는 이상세계는 고대 그리스식의 신분제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가 가정한 사회 속에서 생산을 담당한 노예는 생각하기를 금해야한다. 정치영역을 점유한 엘리트 계층이 숙고를 통해 정의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예는 오직 생산에 열중하는 것이 옳다. 그들은 선택과 책임을 다할 지적 능력 함양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생산에 필요한 숙련을 익혀야한다. 그러니 이들에게 자유에 대한 인식 따위가 왜 필요하겠는가? 라는 것이 A의 내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보편적 의미에서 통용되는 자유의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란 무엇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주권자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에 보면 자유는 천부인권에 해당한다. 즉 계층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각자 자유롭게 결정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이 같은 밀의 천명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자유에 대한 향유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특권층의 권리로 자유를 한정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시도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저항과 투쟁으로 우리는 자유의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역사를 이끌며 유권자로서 책무를 감당하려 노력해왔다. 

 

A는 개인들의 자유를 한정하려는 권력자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언급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누구를 지칭할지 묻지 않아도 알만하다. 앞이 캄캄하다. 그는 내년 대선 정국의 양대 산맥을 이룰 후보자 중 한 사람이다. A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될 가망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실이 이렇다면 우리는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더 큰 문제는 우리 유권자들이 거대한 산업 조직과 유사한 형식의 강제성을 띤 거대정당과 직면해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힘으로 좌지우지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위력을 가진 정당들은 자당에 이익이 될 만한 존재를 후보자로 선정한다. 이러니 유권자는 후보자를 잘 알 수도 없고 최종 후보자를 선정할 수도 없다. 결국 후보자와 유권자의 관계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통찰한 결과가 아니라 추상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유권자는 후보자가 과대 포장된 이미지로 정치쇼에 가까운 거짓 존재가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반면 후보자는 가상의 자기 이미지에 격하게 반응하는 유권자를 자유도 모르는 못 배운자로 불신하게 된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에게 유리한 전략은 무엇일까? 그를 적으로 대해야할까, 아니면 우리 진영으로 포섭하는 것이 유리할까? 그가 던진 문장에 대책 없이 함몰 될 경우,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일단 두 가지를 가정할 수 있다. 가장 큰 상수는 A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는 것이다. 즉 밀의 유지를 이어받아 선택과 책임을 다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유권자의 권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시민 다수는 생산 활동에만 전념하는 노예가 아니라, 정치 마당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숙고하는 존재란 사실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문제는 A의 견해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유권자도 있음으로 그가 당선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고려한 차선책은 우리 지역 내 표심을 분산 시키는 것이다. 요컨대 그가 당선될 경우, 자신의 정권수립에 우리 지역의 표심이 크게 작용했음을 보여 줘야한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그가 우리 지역을 ‘자유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할 전략이 필요하다. 

 

얼마나 배워야 자유의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하고, A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자유의 필요성을 설명해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거대 정당을 들썩거릴 정도의 유권자로서의 선택과 책임을 감당할만한 자유가 있음을, 그에게 상기시킬만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