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후원하기

[칼럼]악성 민원인의 본성

[완주신문]최근 공공기관은 ‘악성 민원인’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폭행하는 취객에다, 동사무소 행정실 직원의 머리채를 잡는 민원인이 있는가 하면, 구청에 8개월 동안 2800여건의 민원을 제기한 사람도 있다. 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글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고, 네티즌들 중 상당수는 본성적 측면에서 악성 민원인들의 행위를 평가했다. 이해 문제가 얽혀있을 수 있겠지만, 저런 정도의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본성적으로 악한 성향이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다.

 

완주군에서도 최근 악성 민원인으로 취급돼 사법처리를 받은 일이 발생했다.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자면, 배매산 고화토 폐기물 사건으로 몇몇 민원인들이 항의를 위해 완주군수실을 찾았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감정이 격해진 민원인 A씨가 “당신들도 이 냄새를 맡아봐야한다”며, 자신들은 수년째 이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폐기물매립장에서 시추한 고화토를 바닥에 쏟았다.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은 A씨를 악성 민원인으로 판단하고,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정말로 A씨가 악한 본성 때문에 고화토를 쏟은 것일까?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필립 짐바르도는 악성 민원 문제를 개인의 악한 본성과 관련시켜 해석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그의 관점은 일견 일리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원(民願)이란 시민의 만족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인데, 여기에 악성(惡性)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그는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를 탐구할 목적으로, 1971년 8월 14일 ‘스탠퍼드 교도소(Stanford Prison)’라는 실험을 했다. 정신과적 면접과 성격검사를 통해 범죄·마약 관련 병력이 없으면서도 폭력을 지양하는 18명의 학생들을 피실험자로 선발했다. 그리고 무작위로 그들 중 일부를 교도관, 다른 일부를 죄수로 나누었다. 교수는 실험 전 각자의 역할에 대해 간략한 오리엔테이션 후, 2주 동안 함께 생활하도록 지시하고 그들의 심리 변화에 따른 행동양태 관찰하기로 했다.

 

그런데 실험초기에 자신의 역할을 어색해 하던 교도관과 죄수들의 행동 양상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틀째부터는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은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죄수역할을 맡은 참가자에게 체벌을 가하거나 고문하는 식으로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 다른 한편 죄수역할의 참가자들은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호소했다. 그중 몇몇 참가자는 신경쇠약 증세를 일으켜 중도에 포기했다. 실험을 시작한 지 약 4일 후에 죄수역할의 참가자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제지하려는 교도관 역할자들의 폭력도 점차 심해지면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2주간 예정이었던 실험은 6일 만에 종결되었다.

 

이 실험을 통해 교수가 얻은 결론은 선하거나 악한 것, 이 중 하나로 인간의 본성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악한 행동은 상황적 조건에 따른 결과물이다. 그의 실험에서는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도 교도관이라는 위치에 선 순간 폭력적인 존재로, 죄수의 위치에 설 경우 열등하거나 비굴한 존재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근거로 교수는 누구라도 악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의 실험은 환경 결정론이라는 극단적 사례에 불과함으로 개인의 책임회피라는 부작용이 배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실험과 결론은 매우 유의미하다.

 

이를 고려할 때 “왜 악성 민원이 발생했을까?” 또 “악성 민원인을 진단하는 기준은 공정한가?”에 대해 충분한 숙고가 필요하다.

 

교수의 입장에서 본다면, 공공기관에서 괴성을 지르거나 한 달에 300건이 넘는 민원을 제기하는 민원인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교도관 역할에 맛들인 피실험자가 폭력적으로 변해 가듯, 삶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그 민원인을 그렇게 내 몬 것이다. 완주군에서 악성 민원인으로 처분 받은 그 민원인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원래 선한 사람들이 분명한)주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완주군수실 바닥에서 잠시 진동하던 그 고통의 냄새는 그들의 삶을 파괴할 만큼 위협적인 것이다. 교수의 인간 본성론에 따를 경우, 배매산 고화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곳 주민의 내면에는 악한 마음이 점점 더 크게 자랄 것이다.

 

이렇다면 악성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행정에는 분명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악성 민원인을 진단하는 기준은 행정부처의 입장뿐만 아니라 민원인들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