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그동안 고생 많았다.
마침내 그(수능)날이 왔네. 12년을 한날같이 준비해왔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일은 네가 준비해왔던 그 수많은 날들 중 하루에 불과해. 또 앞으로 네게 닥칠 많은 날들 속에 포함된 시간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당황하지도 말고 쫄지도 마. 그냥 네가 맞아야할 그 숭고한 여러 날들 중에 일부니깐, 담담하게 대하기 바란다.
지난번에 우리가 나눴던 ‘4차 혁명에 적합한 인재 양성’에 대한 토론 기억나니? 그때 우리는 오늘날 교육 화두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는 점에 의견 일치를 봤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류 알파고, 이 존재는 빅데이터 조합과 분석을 활용한 자율적 학습능력으로 한계 추론이 불가능할 정도로 진화하고 있잖니.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다량의 정보 분석과 단순 문제 해결능력 면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야. 그런데도 왜 시험제도는 변하지 않는 걸까?
대학입시란 대학 측에서는 능력 있는 학생 모집에 골몰하고, 학생들 입장에서는 성장의 발판이 될 학교를 찾는 거지. 양측의 선택을 매개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지만, 종착점은 어쨌거나 성적(成績)이잖니. 현행 입시제도에서 수능과 내신은 습득한 정보를 단순 암기하여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답을 찾는 것이지. 이 경우 고득점은 비판적 사고를 통한 창의성 보다는 암기와 답습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 너의 주장이었어. 결국 이런 학생이 명문대를 간다는 거야.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기에 취업을 고려할 때, 현행 공부 방식은 문제가 너무 많아.
4차 산업시대 고용주는 단순 정보 보유형 인재만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거든. 이미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인간보다 인공지능을 선호한다고 해. 특히 의료 기술과 금융 분야는 인간 노동자를 대거 축출해낸 상태잖니. 머잖아 자율 주행 인공지능 자동차가 거리를 메울 것이고, 문제 분석은 물론이고 편견과 사적 감정까지 완전히 배재한 로봇법관이 등장할 거야. 이를 고려할 때, ‘어떻게 해야 인류는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이 현대 교육계의 화두여야만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대학은 여전히 정보 습득량을 기반으로 단순 분석 능력형 학생을 발굴하고 있어. 이런 대학의 학생들이 세계적 기업의 문턱을 넘기는 어려울 거야. 이 부분에서도 우리는 의견을 같이 했지.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해.
내일 오후 5시가 되면 그간의 네 노고가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겠지. 하지만 엄마는 수능결과가 네 삶을 완전하게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수능은 네가 밟아 가야할 여러 계단 중에 하나일 뿐이거든. 결과와 무관하게 엄마는 네 편이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존중할게.
다만 네가 살아갈 이 사회가 좀 더 합리적으로 변하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