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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동학혁명 최후 항전지를 찾아서

길 없는 산행으로 1년 넘게 헤매다 발견
동학군 모진 추위와 두려움 버티며 항전
기왓장과 항아리 파편 등 유적지 관리 전무

[완주신문]대둔산 동학혁명 최후 항전지가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소식으로만 전해 듣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찾아 나선 것은 2017년 1월 1일 새해 첫날이였다.

 

처음에는 눈이 하얗게 쌓인 대둔산을 등산로도 없는 석도골 옆에서 시작하였다.

 

대둔산에 오르기 전 마을 주민과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저 멀리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는 대로 막상 오르고 보니 어디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고 특히나 눈이 쌓여서 오르는데 힘이 드는 것이 이만저만 위험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렵게 산을 올라서 항전지에 도착해 주변을 맴돌면서도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는데 그것은 항전지 옆의 형제 바위도 확실히 몰라 어딘지 모르겠고 눈앞에 놓인 높은 봉우리가 맞는데도 저기 높은 곳에 누가 돌을 쌓았을까 생각만하고 힘이 들다 보니 ‘나중에 다시 오지 뭐’라고 체념을 하고 내려와 버렸다.

 

 

훗날 동학혁명 최후 항전지를 기어코 찾아냈을 때 내가 찾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선 그 절벽 위로 오르는 길이 없어 위험하고 아래에서 보면 위에 비둘기 둥지 같은 넓은 공터가 보이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부터 5번은 더 올라 대둔산 동학혁명 최후 항전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대둔산 사계절 역사 문화 프로젝트를 겁 없이 혼자서 하고 있던 터라 틈만 나면 대둔산을 다니고 있었다.

 

한번은 옥계동쪽으로 올라 항전지 바로 위쪽 봉우리에 텐트를 치기도 했는데 바로 위에서 항전지가 뻔히 내려다보이는데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서 둥지같은 그곳이 확실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모르고 금강계곡과 석도골 옥계동을 마치 산짐승처럼 뭔가에 홀려 찾아 다녔다.

 

 

그러다 결국 지난 2018년 늦가을에 동학혁명 최후 항쟁지를 찾아냈고 처음 왔을 때 그 자리란 것을 알고는 감회가 새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하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감회는 뒤로하고 흥분한 마음에 얼른 봉우리 뒷쪽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해서 어렵게 체조 선수처럼 대롱대롱 나무 가지에 매달려 봉우리에 튀어 올라갔다. 그리고 오름과 동시에 몇번의 절을 하고 주변 사면을 둘러보는데 25평 정도의 평평한 넓은 곳이 마치 어미 새가 어린 새끼를 품는 비둘기 둥지처럼 바람한 점 없이 포근하고 아늑해 보였다.

 

내가 처음 항전지를 찾아 나설 때 산 아랫마을 주민은 항전지 주변에 암자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니고 내가 직접 오르고 보니 이곳 항전지가 암자 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여기에서 기왓장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여기가 암자터고 또한 주변이 넓고 막혀 있으니 항전하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혁명군은 미리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항전하면서는 초두막 몇채가 전부였다고 전한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 무슨 기와집을 지었겠는가. 또한 깨진 항아리 파편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우물도 있었다는데 우물은 아니고 주변에 샘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주변 바위틈을 다 둘러 봐도 세월이 흘러서인지 물이 나오는 샘의 흔적은 없었고 시간을 가지고 더 찾아보기로 하였다.

 

동학혁명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에게 폐퇴하여 이곳에 숨어 3달여간을 결사 항전하며 대둔산 모진 추위와 두려움에 버티며 싸웠다고 생각하니 숙연하고 짠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요소요소를 기록하고 기왓장과 항아리 파편이 중요한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진으로 찍고 혹시나 잃어 버릴까하는 마음에 저 어두운 바위 밑에 감추어 두고는 다음에 또 오겠다고 다짐을 하고 내려왔다.

 

 

석도골 계곡으로 조심조심 내려오다 금강계곡으로 접어들어 케이블카 쪽으로 당도하니 가족간에 친구끼리 아니면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가을 막바지 오색 단풍을 구경 나온 등산객들과 어우러져 단풍인지 사람인지 구분 짖기 어려울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들은 막바지 가을을 즐기려는 말끔하고 단정한 복장에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면, 내 모습은 마치 산에서 길을 잃고 며칠간 헤매다 내려온 사람처럼 얼키고 설키며 축처져 초라한 모습이었다. 즐거운 등산객들과 나의 모습은 묘한 감정으로 서로 비교가 됐다. 또한 어떤 연세 많은 어르신이 무장공비 같은 남루한 내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안쓰러운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금까지 대둔산을 찾아 헤매고 다녔나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잊혀진 동학 최후항전지의 의미를 떠올리니 가슴 한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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