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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게재]건강한 지역 언론은 지역 주민의 관심에서 자란다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 발의...하지만 관련 예산 편성하지 않아 논의 중단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 통해 신문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참여 높여야
박민 전북민언련 공동대표가 말하는 전북 지역 언론의 현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전북민언련)은 언론의 공공성 회복과 모두를 위한 미디어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시민단체다. 1999년 12월 16일에 시작된 민언련은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회원들과 주민들의 모금 활동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전북민언련 박민 공동대표는 이러한 운영 원칙에 대해 “우리는 언론이 권력과의 관계에서 유착돼 있다는 점을 비판하는 단체인데,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권력을 제대로 비판하기 어려워진다”라며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시민에 의해 운영되는 단체를 만들어 가보자는 생각으로 민언련을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전북 민언련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기존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해 언론이 본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 △시민들이 스스로 미디어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시민들이 언론을 비판적으로 읽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지난 23일, 전북대 건지영상아트홀에 위치한 지역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전북 민언련 박민 공동대표를 만나 전북지역의 언론상황과 지역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언론 개혁에서 시민 미디어로
먼저, 박민 대표는 전북 민언련이 출범하던 당시의 사회적 배경부터 짚었다.

 

그는 “민언련이 처음 출발했을 당시에는 신문과 방송 같은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서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대였다”라며 “그때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시민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는 한 사회가 미래를 준비하고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라는 문제의식에서 민언련 활동이 시작됐다”라고 설명했다.

 

초창기 전북 민언련 활동의 한 축은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외적인 요소, 즉 권력과 자본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에 따라 ‘신문개혁국민행동’을 중심으로 언론 관련 법·제도 개정, 언론 내부 사주의 문제, 자본으로부터의 편집권 독립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아 활동을 이어왔다.

 

동시에 레거시 언론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도 커졌다.

 

박 대표는 “그래서 ‘시민의 미디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라며 “기존 미디어에 대한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자는 운동을 통해 시민이 직접 미디어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과정에서 ‘퍼블릭 액세스’ 운동이 전개됐고, ‘RTV’와 같은 시민방송을 만드는 등 시민 미디어를 확장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와 실천이 이어졌다.

 

또한 전북 민언련은 당시 한국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조선일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안티조선 운동’, 이른바 ‘조선일보 제목 찾아주기 운동’을 전개했다.

 

박 대표는 “조선일보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실체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전북 지역 언론 현실을 마주하다
전북 민언련의 활동은 중앙 언론 비판에 그치지 않고, 전북 지역 내부의 언론 구조와 관행을 돌아보는 데로 확장됐다. 민언련은 전북 지역 언론의 현실을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정부 홍보용으로 배포되던 계도지와 촌지 관행을 없애자는 운동, 기자실 개혁 운동, 언론 사주의 개입 문제, 홍보 예산 문제 등을 전방위적으로 다뤘다. 총선 보도 모니터 활동을 통해 백서를 발간하며 지역 언론에 대한 본격적인 모니터 활동도 시작했다.

 

이후 시민들이 직접 미디어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퍼블릭 액세스를 지원하는 시스템으로서 영시미(전주영상시민미디어센터) 창립 운동도 진행했다. 지역 언론 전반의 여건이 악화 되자, 2005년에는 지역신문법 제정 운동을 통해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이하 지발위)’ 설립으로까지 활동이 이어졌다.

 

◆전북은 언론이 가장 난립한 지역
박민 대표는 전북 지역 언론의 열악한 현실의 원인으로 구조적 특수성을 짚었다.

 

그는 “전북은 영남이나 강원 등 다른 지역과 다르게 전국에서 가장 지역 언론이 난립 돼 있는 지역”이라며 “일간지들이 난립한 상태에서 한정된 광고 시장을 나눠 갖다 보니 전반적인 경영 여건이 굉장히 열악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전북은 일반 기업이 거의 없어 지자체가 최대 광고주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 홍보 예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는 “문제는 매체 간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괜찮은 매체와 그렇지 않은 매체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로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가 이뤄졌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원래 구독자의 평가를 받아 생존해야 하지만, 지자체가 일정 수준의 광고를 제공하는 구조에서는 비판적이고 건강한 언론이 자리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에는 지역 주간지를 중심으로 한 모범 사례도 존재한다.

 

박 대표는 “부안독립신문은 방폐장 투쟁과 새만금 투쟁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와 함께 만들어진 신문으로 정착했고, 진안신문, 김제시민의신문, 고창해피데이 등도 지역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 온 사례”라고 평가했다.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는 왜 필요한가
올해 전북도의회에서는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가 발의됐지만, 집행부가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서 논의가 멈춘 상태다. 그렇다면 이 조례는 왜 필요한 것일까.

 

박 대표는 “지역신문은 경영 여건이 워낙 열악해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재원을 마련할 토대 자체가 부족하다”라며 “지역 정보를 생산하는 공익적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목적은 지역신문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는 것이다.

 

그는 “주민들이 신문의 내용과 운영에 관심을 가지면, 언론도 스스로 더 조심하게 된다”라며 “그런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의 또 다른 목표”라고 말했다.

 

물론 조례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지역사회 차원에서 언론 문제를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출발점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집행부의 소극적 태도, 그 배경
박민 대표는 집행부가 조례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가 만들어지면 지역신문발전위원회라는 구조가 생기게 된다”라며 “집행부 입장에서는 기존의 홍보 예산을 통해 지역 언론을 관리하는 정도로도 충분한데, 시민과 학계 등 지역사회가 개입하는 구조를 원치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전북 지역 내 일간지의 견제와 압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일부 지역 일간지들 사이에서 반대 목소리가 작동했고, 집행부가 외부 반발을 의식하면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신문사와 기사 생산 과정에는 잘못된 관행이 존재할 수 있다”라며 “이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올바른 언론은 만들어질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감시와 견제는 공공의 관심과 개입을 전제로 한다.

 

그는 “기존의 지역 언론사들은 언론으로서 기본 요건을 수행하는 매체를 지원하는 시스템, 그 최소한의 개입조차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라며 “심하게 말하면 지자체 단체장과 적당히 ‘형님, 동생’ 관계를 유지하며 홍보 예산으로 최소한의 생존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바뀔 여지는 있을까
그렇다면 전북 지역의 언론 지형은 바뀔 수 있을까?

 

박민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를 중요한 계기로 꼽았다.

 

그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단체장 후보들에게 언론 정책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고,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단체장들은 사적인 관계로 언론 문제를 풀고 싶다는 속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후보의 입장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리고, 언론 문제를 공적인 논의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라며 “그것이 향후 언론 정책을 만들어 가는 기준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북 민언련은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와 관련해 단체장 후보들에게 직접 입장을 묻고 확인하는 과정도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잘못된 관행을 통해 유지돼 온 언론 생존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북 민언련은 홍보 예산 개혁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홍보 예산을 임의로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홍보 효과가 객관적으로 검증되는 기준에 따라 집행되도록 구조를 바꿔 나간다는 방침이다.

 

◆열악한 풀뿌리 지역신문 환경
올해 풀뿌리 지역신문들은 특히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부안독립신문은 군정 비판 보도 이후 지자체 광고가 중단돼 백지 광고를 실어야 했고, 다른 지역신문들 역시 지자체장의 개입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언론은 권력과 자본, 소유주로부터 독립돼야 하지만, 지자체가 최대 광고주인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지자체가 불리한 기사를 쓴 매체에 광고를 집행하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광고 예산 집행 과정에 객관적인 기준과 독립적인 위원회가 필요하다”라며 “독립적인 운영 기구를 통해 지자체가 언론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서는 공적 지원 구조를 확대하되, 지원 단위의 설정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지역신문의 취재 범위와 지원 스케일 단위는 서로 이질적이어야 한다”라며 “예를 들어 진안을 다루는 신문이 진안의 지원을 받으면 지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광역 단위에서 지원받는 구조라면, 상대적으로 눈치를 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박민 대표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지역신문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뉴스 사막화가 진행된 지역에서 경제 성장률 저하와 부패 지수 심화가 나타난다는 통계는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된 바 있다.

 

박 대표는 “신문이 군정을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군정은 자기 마음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라며 “특히 단체장과 의회가 같은 정당일 경우 견제 구조는 더욱 약해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신문의 필요성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시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언론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한 목표”라고 덧붙였다./전북풀뿌리언론연대 진안신문 신지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