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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통합’이 달갑지 않은 이유

[완주신문]신년벽두부터 우범기 전주시장이 완주·전주 통합을 선포한 후 전주시 국회의원 출마자들도 덩달아 완주·전주 통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지난 10일부터는 통합건의를 위한 서명운동까지 시작됐다. 완주군 유권자의 2%인 1693명의 서명만 받으면 통합건의가 가능해지니 통합을 위한 실질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완주군 내에서는 세차례 통합 시도 때마다 주민 간 극심한 갈등과 분열로 큰 상처가 남아 있다. 이에 전주시 측의 통합 주장에 대해 무시와 무관심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실질적 절차가 시작된 상황에서 무대응은 자칫 과거처럼 지역 내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통합과 관련된 실익을 검토하고 올바른 정보를 주민들에게 전달해 분열을 최소화하고 주민 단합을 유도할 의무가 정치·행정에 있다. 하지만 아직 미온적이다.

 

전주시 인구는 완주군의 6배다. 예산도, 부채도 전주시가 훨씬 크다. 정치력, 행정력 역시 완주군의 규모는 전주시에 한참 모자란다.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평한 통합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근래 행정구역이 통합된 청원·청주, 마산·창원·진해 사례를 볼 때 서로 여건이 비슷한 상황에서 통합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경우 결과가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통합’은 체급이 비슷한 경우에 어울리는 말이다. 균형이 맞지 않을 때 ‘통합’이라기보다 ‘흡수’나 ‘지배’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아울러 1935년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며, 전주군이 완주군으로 개칭되며 현재 ‘완주군’이라는 행정구역이 생기게 된 후 완주는 줄곧 전주에 빼앗겨 왔다. 1957년 초포·우전·조촌·용진·상관면 일부가, 1973년 용진 신정리 일부가 전주로 편입됐다. 1983년 상관면과 용진면 일부도, 1987년 현재 조촌동은 통째로 전주 땅이 됐다. 1989년 용진면 산정리, 금상리와 구이면 석구리, 원당리, 중인리, 용복리가 전주가 됐으며, 1990년 이서면 상림리, 중리 또한 전주시로 편입됐다.

 

이를 볼때 ‘완주는 지속적으로 전주에 빼앗겼다’는 주장은 거짓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주시의 통합 선포는 ‘완주를 통채로 흡수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심지어 실익을 떠나 이런 식의 일방적인 통합 추진은 ‘한일합방’까지 떠오르게 한다. 

 

이것이 전주시의 통합 주장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