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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민중 혁명의 뿌리가 완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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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신문]제8대 의회 마지막 행정사무감사에 임하며 본 의원이 집행부와 공직 사회에 강조한 것은 ‘완주의 정체성 찾기’이다. 정체성은  “완주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완주는 무엇이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이미지이자 콘셉트이다. 전주시는 한옥, 한복, 한식에서 한국으로 확장해 전라북도 천만명 관광시대를 이끌더니 지금은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불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은 어떤가. K-팝, K-방역 등 K로 대변되며 전 세계에 K 문화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정체성은 모든 사업의 기반이자 뿌리가 되는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개념이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따라 비전과 세부전략이 도출되어야 비로소 일관성 있는 군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완주 정체성 찾기와 관련하여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 있다. 조선 중기 문인이자 사상가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다. 정여립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던 당쟁의 중심 사건인 기축옥사(己丑獄事, 1589, 선조 22년)의 핵심 인물로, 본인은 진안 죽도에서 자결하였으며 완주군 상관면 신리 월암마을에 있는 정여립 생가 터는 파가저택(죄를 범한 자들이 살던 집을 불사르고 그곳에 연못을 만들어 후대에도 집을 짓고 살지 못하게 만드는 조선시대의 최고 형벌) 되어 최근까지도 흔적만 남아 있었다. 

 

당쟁에서 출발한 기축옥사와 정여립에 대한 평가는 당대부터 지금까지 첨예한 대립과 논란 속에 재조명되고 있다. 핵심은 정여립의 ‘변혁 사상’이다. 그가 역모를 꾸몄다고 제시된 증거는 그의 대동계 조직과 활동에서 비롯되는데, ‘대동계’라는 명칭에서 느껴지듯이 “천하는 공공의 물건(天下公物)”이며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랴(何事非君)”는 자유와 평등사상이 정여립의 기반이었다. 단채 신채호 선생은 정여립을 혁명적인 사상가로 높이 산 바 있고,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보다 50년이나 앞선 공화주의자였다는 평가도 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3.1운동으로 계승되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 독재 타도를 부르짖었던 5.18 광주혁명에서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에, 민중 혁명의 뿌리에 정여립 선생의 대동사상이 서 있는 것이다. 

 

완주군 상관면의 정여립 생가 터는 한동안 말 그대로 집터의 흔적만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가 최근 정자 등의 쉼터, 주차장을 갖춘 공원으로 모양새를 갖추고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정여립 선생의 역사적 기록과 가치를 완주군 집행부가 인지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단순히 우리 완주군의 정체성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정여립의 대동사상은 당대의 정신이고 현재 대한민국의 정신이다.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염원했던 인류 역사의 정신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민중 혁명의 뿌리가 바로 우리 완주에서 시작한다는 역사 문화적, 사상적 ‘정체성화’ 작업을 지금부터 리드해 나가야 한다. 완주의 정여립이 대한민국의 정여립, 공화주의자로서 세계적인 정여립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공감과 지지를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