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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에 스쳐 보이는 ‘악의 평범성’

[윤창영의 고운 시선 고까운 시선11]

[완주신문]1961년, 지구촌이 한 인물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보인 일이 있다. 그 사건은 바로 루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다.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전범으로 유대인 학살 실무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은 유럽 각국에서의 유대인 학살 등 총 15개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고, 그는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다. 

 

60년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의 재판.

 

그는 “나는 신 앞에서는 죄가 있을지 몰라도 법 앞에서는 죄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그가 무죄라며 강변한 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 한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다는 것. 둘째는 관청에 공무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상부의 지시대로, 그저 명령에 따른 것 뿐이라는 것이다.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유대인 학살 책임자냐 그저 공무원으로 역할을 충실히 한 평범한 시민이냐는 두가지 측면에서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아이히만의 재판이 더욱 유명해진 이유는 한나 아렌트라는 정치철학자가 이 두가지의 충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 놓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정치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3차례의 칼럼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것으로 아이히만의 행위를 결정지었다. 

 

당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유대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 학계는 그녀의 발표에 충격과 함께 더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그후 현재까지도 ‘악의 평범성’은 언제나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서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왔다.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악의 평범성’이 소환되는 이유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하게 될 때 핵심적 이야기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녀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 계속 이야기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시대에 곳곳에서 벌어지는 묻지마 범죄와 관료주의, 인권문제 등이 충돌할 때마다 다룰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하고 단호하게 집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항상 우리와 함께,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논쟁의 출발선에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완주군의 집값과 땅값 상승에서도 왠지 ‘악의 평범성’이 데자뷰되는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삼봉신도시 개발계획이 아닌 뒤에서 진행되고 있는 삼봉신도시의 내면을 살펴보면 60년전 아이히만의 재판이 스쳐 지나간다. 

 

15만 완주자족도시를 만들기 위한 삼봉신도시는 완주군의 발전을 견인할 새로운 신도시라는 기대감이 큰 곳이지만, 실상 완주군민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삼봉신도시의 집값은 물론 땅값이 바로 옆동네인 삼례와 봉동 둔산리와 비교하더라도 위화감이 들 정도다. 

 

삼례나 봉동의 집값이 완주군에서는 다소 높다하더라도 평당 40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삼봉신도시에 세워진 아파트가 평당 900만원에 육박하는 분양이 이뤄져, 사실상 향후 5년내 이 지역의 아파트거래시 평당 1000만원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봉신도시의 직접적인 사업관련자인 토건업자들에게서 비춰지는 모습은 그저 돈벌이에만 매몰된 것 같은 느낌을 감출 수 없다. 

 

A건설사의 아파트 분양홍보와 관련, 도내 B일간지의 기사에 ‘1년 전매제한지역으로 투자가치 높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가난한 완주군민들은 더욱 가난에 내몰리겠구나’하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토건업자들이 혹시나 ‘나는 돈만 벌면 된다. 그 나머지는 어떤 영향을 미치든 아무 관계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한나 아렌트는 그들에게 ‘악의 평범성’이라는 잣대를 들여댈 것이 분명하다. 

 

삼봉신도시에서 벌어지고 저질러진 이 상황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다시 소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악의 평범성’에 우리 모두가 익숙해져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저 돈벌이에 치우쳐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 중요했다면 그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의 중심에 서서 또 다른 아돌프 아이히만이 되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지역이 죽고 암담한 상황에 내몰리는 완주군의 미래를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고, 비판적 사유 없이 돈벌이만 앞세운다면 그야말로 악마적 행위로 간주 될 것이다. 

 

더불어 완주군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알거나 알 수 있었다면, 또 이에 대한 대안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평범함 속에서 나타나는 악마적 행위로 간주 될 수 있다. 

 

완주군과 토건업자들이 이 같은 악마적 행위에 빠져 들지 않도록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 

 

완주군은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 아니 수천 수만년의 내일까지 이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삼봉신도시뿐 아니라 모든 사업과 관련해 매 순간순간, 죽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끝나지 않는 내면의 갈등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비판적인 생각과 보편적인 질서에 합당한지 돌아보는 자세만이 ‘악의 평범성’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내가 한 명의 아돌프 아이히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