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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코로나 이후의 더 나은 일상을 꿈꾸며

[완주신문]얼마 전 사회적경제와 관련한 기사를 주로 다루는 신문에서 지역에 있는 비어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빈집 큐레이션 플랫폼 ‘유휴’ 운영하고 서울 동작구에 작은 술집 ‘공집합’을 만든 소셜벤처 건축사무소 블랭크의 문승규 대표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이런 일을 색다른 지역성을 찾기보다 지역주민의 더 나은 일상을 위해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완주공동체미디어센터는 ‘방구석 장기자랑’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불가능해서 교육, 공연, 영화상영 등이 어려워지자 주민들이 동영상을 찍어 채널에 올리면 이를 심사해서 작은 상을 주는 것이었다. 가족이 모여 합주를 하고 아이들은 싱거운 놀이로 장기자랑을 했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창단은 힐링송을 각자 불러 편집한 동영상을 만들었고 동네 고등학생은 여자친구가 없는 것도 코로나 때문이라는 자작곡 동영상을 올렸다. 그렇게 우리 동네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응원했다.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지자 동네에 있는 미디어센터와 시장의 상인회가 ‘느닷없이 영화상영’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그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으니 영화를 보며 서로 위로하자는 행사로 미디어센터는 영화를 상영하고 상인회는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동네 주민들이 모였으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정작 많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은 언택트(Untact)로 살 수 없는가 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할까.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고산이라는 조그만 시골 동네에 산 지 10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살아보자고 했다. 막내는 전주의 학교를 자퇴하고 동네로 돌아와 ‘자전거 탈 때 바람이 달라’라고 말한다. 얼마 전 집사람은 도시와 냄새가 다르다면서 ‘그냥 고산에 살까 봐’라고 말한다. 대둔산 자락에 만경강을 끼고 있어 자연이 좋은 곳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고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의 먹거리가 부모에게는 부담이었다. 학교급식 예산으로 꾸러미를 만들어 공급한다고 했으나 조리가 어려운 가정은 곤란해 했다. 우리 동네 학부모들이 모여 군청과 교육청을 찾아다녔다. 그러자 지역의 협동조합, 로컬푸드 농가가 농산물과 현금을 기부하고 공공급식센터가 배송, 시니어클럽이 조리, 학부모회가 배달을 맡아 각 가정에 반찬을 전달했다. 대도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아챘으리라.

 

내가 일하는 곳은 시골 읍내의 조그만 초등학교 옆에 있다. 우리 동네는 확진자가 없었지만, 코로나19로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못했다. 하지만 오전 적당한 시간이 되면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학교 놀이터에 나왔다.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그네가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면 창밖의 풍경을 보곤 했다. 아이들과 부모들의 표정이 그렇게 평온하고 행복할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져 늦은 개학과 함께 아이들은 학교에 왔지만, 더는 그 평화로운 풍경을 볼 수 없었다. 감염병 사태 이전이 정상이었는지, 그 중간이 정상이었는지, 그 이후가 정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감염병 사태로 무엇이 정상인지 모호해졌지만, 우리 동네는 빠르게 일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상이 문승규 대표의 말처럼 조금은 ‘더 나아진’ 일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