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후원하기

[기고]화폐의 진화 ‘재난기본소득’

[완주신문]완주으뜸상품권을 보면 아나키스트였던 실비오 게젤이 고안한 ‘공짜돈’(Freigeld)이 떠오른다. 실비오 게젤의 저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 공짜돈의 이론을 찾아볼 수 있다.

 

기존 경제 질서에서 우리들이 쓰고 있는 돈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없는 잉여자본을 생산케 한다. 우리들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보관하고 유지하는데 비용이 들지만 화폐는 별도의 비용없이 그 가치가 유지된다. 이에 저축이 가능하고 잉여자본을 만드는데, 가장 좋은 방식이 화폐이다.

 

자본이 형성되는 원인이 바로 저축이다. 하지만 자본의 축적이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다. 국내에서는 IMF를 경험한 것처럼 대규모 경기침체와 대공항 등은 기존 자본주의의 고질병이었음을 증명한다.

 

돈을 빌린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 집이나 공장을 강제로 빼앗기고 한곳의 부도가 연쇄적으로 악순환을 일으킨다. 아울러 자본을 축적한 부자들은 이때 싼 가격에 모든 것을 쓸어 담아 자산을 더 키운다. 경기침체에서 어떤 이는 파산을 하고 어떤 이는 더 부자가 되는 불평등한 상황이 반복된다. 특히 부자가 되는 것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큰 피해를 입는다. 이러한 불균형한 부의 재분배의 원인은 화폐의 ‘축적’에 있다.

 

이런 저축이 낳는 각종 문제가 있지만 이런 부작용을 만회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통화량을 늘리거나 금리를 낮추는 방법을 활용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문제를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다. 재화와 화폐의 교환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조건이 있다. 화폐가 저축매개물로서 재화에 비해 유리한 만큼에 상응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이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이자는 재화와 실물에도 영향을 준다. 즉, 모든 재화와 실물은 이자를 보충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수 없다면 교환은 멈추는데 이것이 우리가 경제위기라고 부르는 현상의 본질이다.

 

이러한 위기는 필연적으로 실업을 유발하고 생산과 물물 교환을 줄어들도록 하는데 공급이 수요보다 줄어 이자를 보충할 수 있게 되면 다시 호황이 찾아온다. 

 

이 모든 게 모두 화폐제도의 결함에서 시작된다.

 

이에 실비오 게젤은 화폐의 액면가격이 점진적이고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화폐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폐의 액면가를 일정일마다 줄이면 유통이 번거롭기 때문에 이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우표 또는 인지를 사용한다. 화폐를 발행하면서 미리 소액 우표를 붙여둘 칸을 마련해놓고 일정 기간마다 이 우표를 붙여야만 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돈에 붙이는 우표의 가격만큼 화폐의 액면가는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된다.

 

이 화폐는 발행연월일이 모두 똑같이 찍혀있고 1년마다 모든 화폐를 회수해서 갱신하며, 스탬프를 제 때 붙인 돈만 돈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용은 기존 화폐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제 때 우표를 붙여주면 되는데 그 우표는 지방정부의 우체국이나 지역화폐의 발행처에서 공급하고, 돈을 가진 사람이 우표를 붙일 시기가 되었을 때 그 돈을 우체국이나 지역 화폐 발행처에 제출하면 우표를 붙이는 칸에 우표를 붙여서 돌려주게 된다. 여기서 생산된 우표의 가격은 공급한 화폐의 감가상각 비용과 일치한다.

 

이러한 화폐 개혁을 하면 저축이 불가능해진다. 일정 주기로 액면가가 떨어지는 화폐를 저축해놓을 사람은 없다. 애초에 화폐 개혁의 목적이 현금 저축을 못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결국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돈을 모아서 노후를 대비하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방법은 있다. 자기가 당장 사용하지 않을 잉여의 돈은 타인에게 대출하는 방식으로 화폐 액면가의 감가상각으로 입는 손실을 피하게 된다. 쌓아두면 규칙적인 손실을 입지만 대출하면 원금을 지킬 수 있다. 이 경우 대출 기간이 길면 길수록 원금을 지킬 수 있는 기간도 그에 비례하여 연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쪽과 빌리는 쪽이 상호호혜적인 관계로 연결된다.

 

이 경우 빌리는 쪽은 개인도 있지만 공동체도 존재한다. 화폐개혁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잉여금을 공동체나 회사 등에 맡기고 그 회사는 그 자금을 여러 공동체들에 투자하여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수탁자의 노후나 필요한 시점에 배당하는 식이 된다.

 

완주군의 재난기본소득 상품권은 사용기한이 정해져있어 축적할 수가 없다. 이야말로 당장 필요치 않은 잉여자본을 곳간에 쌓아둘 이유가 없음을 보여 주는 좋은 선례다. 이번 기회에 그간 당연한 듯 받아들인 화폐제도에 대한 회의적 고찰을 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