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후원하기

[완주산책]상관 편백나무 숲길을 걷다

[완주신문]처서가 지나면서 여름의 기운은 확연히 줄어들고 계절은 가을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맑은 날 해가 쨍할 때는 아직 여름이 머뭇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침저녁 날씨는 이미 여름과 멀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이런 날씨는 걷기에 참 좋다. 여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걸을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상관 편백나무 숲이다.

상관 편백나무 숲은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있는 공기마을과 접하고 있다. 전주에서 남원 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상관 IC를 지나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공기마을로 이어진다. 공기마을 가는 길 좌•우측으로는 펜션과 카페가 여럿 보인다. 편백나무 숲이 입소문 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공기마을 입구에는 대형 주차장도 있어 편백나무 숲을 찾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위쪽 편백나무 숲 입구에 있는 편백 숲 쉼터에도 조그만 주차장이 있지만 공기마을을 구경도 할 겸 마을 입구 주차장부터 걷기로 했다. 주차장을 나오면, 느티나무와 팽나무로 이루어진 마을 숲이 눈에 들어온다. 옆으로 길게 늘어선 모습에서 마을의 역사가 느껴진다. 공기마을 숲은 전형적인 수구(水口)막이 숲이다. 한오봉(570m)에서 흘러온 물이 마을을 거쳐 빠져나가는 물길 옆으로 마을 숲을 만들었다. 옛사람들은 물길을 따라 물만 흘러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좋은 기운이 함께 빠져나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길게 숲을 조성했다. 그렇게 만든 숲은 마을을 안옥하게 만들어 정서적으로도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지금도 30여 그루가 남아 있어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있다. 마을 숲을 지나 마을 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가에 있는 정자를 만난다. 정자 현판에는 창암정(蒼巖亭)이라고 되어 있다. 창암은 추사 김정희, 눌인 조광진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명필로 불렸던 이삼만(李三晩)의 호이다. 공기마을은 창암 이삼만이 만년(晩年)을 보냈던 곳으로 지금도 마을에는 집터가 남아 있다. 

마을을 지나면 편백 숲 쉼터가 나온다. 차와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부터 편백나무 숲길이 시작된다. 길은 차가 한 대 정도 지날 수 있는 임도로 되어 있어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임도 양쪽으로는 편백나무 숲 후예들이 줄지어 길을 안내한다. 그렇게 300여m를 가면 반듯반듯하게 잘 자란 편백나무 숲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숲이다. 편백나무 숲에는 쉼터를 만들어 산림욕을 하면서 쉴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편백나무 숲 오솔길을 따라 걷는 길과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 갈라진다. 오솔길(2km)은 숲의 진한 향기를 맡으며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이고, 임도 산책로는 유유자적하면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두 길은 중간에 다시 만난다. 취향에 따라서 선택하면 된다. 이번 걷는 길은 임도를 선택했다. 부담 없이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도 산책로 양옆으로는 마침 꽃들이 가득 피어 있어 꽃길을 걷는 기분이다. 화사한 물봉선과, 귀여운 고마리 꽃, 수수해 보이는 여뀌 꽃, 살짝살짝 보이는 예쁜 이질 꽃까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꽃 길을 만들었다. 특히 물을 좋아하는 물봉선은 산책하는 동안 계속해서 따라올 정도로 대단히 큰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데 상관 편백나무 숲의 또 하나 자랑거리로 삼아도 좋겠다. 

꽃구경을 하면서 걷는데 이번에는 돌탑이 눈길을 끈다. 돌탑 옆에 ‘편백 숲 탑길’ 안내판이 보인다. 임도 옆으로 난 편백 숲 산책로를 따라가 보았다. 수많은 크고 작은 돌탑이 편백나무와 어우러져 있다. 아주 특별한 장면이었다. 돌탑을 뒤로하고 다시 임도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태풍의 영향인지 숲에는 바람이 있다. 한 번씩 세게 불 때마다 숲을 흔들어 놓는다. 산책로 옆에 있는 나무에서는 낙엽 몇 개가 파르르 떨며 허공을 가른다. 잎에는 노란색 물이 들었다. 산책로에서 살짝 가을 냄새가 난다. 

편백 숲 쉼터에서 임도 산책로 반환점까지는 3.9km이다. 걸으면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임도는 약간의 경사가 있다. 그래서 반환점에 도착해서 보면 그제야 산 중턱까지 올라온 것을 알게 된다. 산책로 반환점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연신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시원하다. 내려갈 때는 중간에 있는 통문 가는 길을 따라서 갔다. 숲길인데 임도 산책로에 비하면 거칠다. 비가 올 때는 물길이 되었다가 비가 그치면 산책로로 바뀌는 그런 길이다. 대신 나무로 만든 통문도 보고, 물봉선과 물소리가 잘 어울리는 계곡 풍경도 보았다. 숲길이 끝날 즈음에 유황 족욕탕이 나온다. 등산이나 산책을 하고 나서 이곳에서 족욕으로 피로를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 족욕탕을 지나면 처음 보았던 편백 숲이 있던 임도와 만난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공기마을이다. 이번 산책은 완주에 찾아온 가을과의 첫 만남으로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