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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선수로2]겨레를 배부르게 한 수로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위하여

[완주신문]대간선수로는 만경강 수계 상류의 물(대아댐, 경천저수지)을 고산 어우보(취입구)에서 취수하여 63Km의 인공 도수로를 통하여 군산 옥구저수지까지 공급하는 수로로 주로 농업용수로 사용하지만 익산 신흥정수장에서 정수된 물은 상수도로 사용된다. 본지를 통해 ▲일제 강점기 일제에 의해 수탈의 물적 토대로 건설된 대간선수로의 역사성과 상징성 ▲대간선수로의 처음 건설과정과 개량 개선에 의해 변화된 현재의 모습 등 토목과 수리 측면에서의 탐구 ▲대간선수로의 기능과 역할, 특히 식량자급 또는 풍년 농사를 위한 거대하고 체계화된 수리시스템에 대한 접근 ▲대간선수로가 통과하거나 지나가는 인근의 도시와 마을들에 관한 이야기 ▲대간선수로의 창조적 미래, 문화적 활용 가능성 등에 대한 탐구 등을 전하려 한다.<편집자주>

대간선수로가 준공된 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대아저수지 등과 세트로 건설되었고, 1923년 6월 16일과 17일 사이토 총독 참석 하에 이리에서 성대한 준공식을 열었다. 쌀 80kg짜리 1500가마가 넘는 비용(1만7천원)이 소요되었고, 대아댐 축조를 맡은 합자회사 간조(間組)는 계약금액 34만원의 10%가 넘는 3만5천원을 상금으로 받는다. 

 

대간선수로의 가장 큰 미덕은 완주 익산 군산의 큰 평야를 옥토로 바꾸고 풍년농사를 가능하게 한 것에 있다. 곧 생명의 수로요, 겨레를 배부르게 한 수로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오늘날 일제에 의한 식민지 수탈의 물적 토대로 건설된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인지 또는 단순한 농업용 수로라고 여긴 탓인지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다. 

 

건설 당시의 사업시행자인 익옥수리조합(조합장, 후지이 간타로)을 물려받은 수로의 운용 관리 기관인 농어촌공사, 대간선수로의 수원(水源)이자 수로의 출발점(어우보)인 완주군, 수로를 통해 농업용수와 상수도를 공급받는 익산시, 농공용수를 공급받는 수로의 종착지(옥구저수지)인 군산시 그리고 이들 3개 지자체의 상위 기관인 전라북도 등 어느 기관도 관심을 갖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는 곧 대간선수로의 역사성과 상징성, 그리고 유력한 미래자산으로서의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간선수로는 지금도 여전히 잘 작동하는 ‘살아있는 역사’이자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비록 일제에 의한 수탈의 물적 토대로 건설되었다지만 우리 땅에 지어졌고,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과 목숨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또 일제가 이 땅을 떠난 후에도 식민자들이 남긴 유산은 수리조합-농조-농어촌공사로 이어지며 식량자급을 위한 대대적인 개량과 개선을 거치며 “체계적이고 정교한 거대 수리시스템(Irrigation and Drainage Facilities)”으로 발전하였다.

 

대간선수로는 이제 농업용수(Agricultural Water)를 공급하는 단순한 수리시설이 아니다. 기본 기능에 더하여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을 제공함으로써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들의 ‘유력한 미래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기본 기능의 효용성과 생산성에 주목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근대적이고 체계화된 수리시설들은 안정적인 농업용수(상수도, 공업용수) 공급과 작물의 생산성 증대(단위면적당 쌀 생산량 3배 이상 증가, 농업용수가 머무는 풍경<김진수>)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하였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다수성(多水性) 벼품종이 주력인 현재에도 수로의 효용성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지금도 잘 작동하고 있으니 사실상 대간선수로는 특별한 재난 상황이 아닌 한 항구적 풍년농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100년의 시간 속에 담긴 역사성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대간선수로는 식민지 수탈을 위한 물적 토대로 건설된 일제 강점기를 상징하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또 ‘조선 최대공사’의 일환이었던 대규모 수리시설(길이 63Km, 최대폭 40m, 최대높이 2.9m, 대아호관리사무소 자료는 58Km)로서의 역사성, 그리고 이와 관련되는 만경강과 지천(전주천, 익산천 등)들의 변천사와 군산지역 간척의 역사, 토지개량의 역사(우리나라 최초의 경지정리 : 1926년 오산 목천리지역), 수리조합의 역사, 주변 경관의 변화와 인근 마을의 역사 등이 포괄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시설들에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니 연풍인락(年豊人樂) 등과 같은 건설 당시의 많은 금석문들도 부착되어 있다.

 

셋째, 근대성에 주목해야 한다. 대간선수로는 조선이란 나라가 상상하지 못한 아이디어의 산물이고 또 우리 조상들이 갖지 못한 기술과 지식이 동원된 근대의 과학적 합리주의의 산물이다. 양수장(Pumping station :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장, 1923년에 준공된 옥구양수장), 잠관(潛管, Inverted syphon : 수로가 하저부河底部를 횡단하는 경우와 같이 낮은데를 통과하는 U자형의 관로), 수도(隨道, 터널), 각종 수문(Sluice gate, 취입수문, 제수문, 분수문, 배수문, 갑문 등)들이 그것이다.(전북농조88년사)

 

넷째,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을 대간선수로에서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한 구간에서는 이미 100년의 시간 속에 형성된 생태적환경과 경관을 통해 어메니티(Amenity : 쾌적성, 아름다움, 즐거움 등의 심미적 가치)를 느낄 수도 있다. 또 익산시의 동산동 구간의 경우에는  친수와 휴식 공간 제공과 같은 다원적 기능이 실현되고 있다. 향후 개보수나 새로운 투자를 통해 이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몇 가지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하나는 대간선수로를 사람들이 따라 걷는 수로길로 만들자는 것이다. 올레길이나 서파랑길과 같은 ‘200리 수로길(가칭)’로 만들어 사람들이 향유하는 ‘살아있는 대간선수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미 걷기나 자전거 타기 등은 국민들의 일상적인 문화로 정착된지 오래이다. 다행히 대간선수로 대부분 구간의 좌우측으로 상당한 넓이의 공간에 이미 길이 조성되어 있으니, 조금만 정비하고 기초적인 편익 시설을 갖춘다면 훌륭한 걷기 길(자전거길)이 될 수 있다.

 

대간선수로 63Km(어우보에서 옥구저수지)에 대아저수지에서 어우보까지 9.5Km, 옥구저수지 한바퀴 6.1Km를 더하면 대략 200리길(78.6Km)이 된다. 또 인근의 마을이나 문화유산 등을 연결하여 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수리사박물관’ 또는 ‘근대농업사박물관’을 만들자는 것이다. 국립이나 도립이면 좋겠다. 일제 강점기 전북지역은 우리나라 수리와 농업의 두드러진 선진지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수리조합들도 만경강 주변평야지대에서 집중적으로 창립되었고, 수리조합 주관의 거대한 수리시설들이 우선적으로 건설되었다. 간척의 역사도 있고, 만경강 개수공사의 역사도 있다.

또 일제의 대농장주들의 진출이 유난히 두드러졌으며, 타 도에 비해 훨씬 높은 농업생산성과 농사기술을 자랑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조선인들은 소작인(1938년 전북 소작지율 77.2%<조선 전체 57.9%>)으로 전락하여 궁핍(1930년 전북 춘궁농가비율 62.2%<조선 전체 40%>)을 면하지 못하였다.(전북의 근대 농업사, 소순열)

 

이런 역사와 관련된 유물들을 박물관에서 담아내고 보존하고 기억하자는 것이다. 또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전북이 최적지이다. 박물관 설립에 전라북도와 3개 지자체가 협력하고 경쟁하면 좋겠다. 이미 관련된 역사와 유물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방치되어 있고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있는 것들은 또 전국 도처에 흩어져 있다. 

 

예를 들면 대아저수지 구댐에 1922년에 설치되었다가 철거된 수압을 활용한 수문 자동 개폐시설 등의 기계들과 옥구양수장에서 철거된 100년된 구보다(久保田) 양수기 등은 전북이 아닌 경기도 안양의 농어촌공사 농기계사업소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또 1908년 12월 8일자로 설립 인가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조합인 옥구서부수리조합의 인가서류(융희황제 어보 날인)는 나주의 한국농어촌공사에 있다고 한다.(익산신문 2021.5.7.일자, 한국농업수리박물관을 익산에 추진하며, 이용희)

대간선수로 준공 100년을 계기로 대간선수로를 우리의 역사적인 자산으로 정당하게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 나가야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차제에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 또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관련기관들과 시민들의 관심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매우 중요하나 일단 행동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하고 싶다. 대간선수로 청소부터 하자. 무장애로 걸을 수 있도록 정비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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