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선수로6]대간선수로의 종점, 옥구저수지

2023.10.04 09:27:23

[완주신문]대간선수로는 만경강 수계 상류의 물(대아댐, 경천저수지)을 고산 어우보(취입구)에서 취수해 63Km의 인공 도수로를 통하여 군산 옥구저수지까지 공급하는 수로로 주로 농업용수로 사용하지만 익산 신흥정수장에서 정수된 물은 상수도로 사용된다. 본지를 통해 ▲일제 강점기 일제에 의해 수탈의 물적 토대로 건설된 대간선수로의 역사성과 상징성 ▲대간선수로의 처음 건설과정과 개량 개선에 의해 변화된 현재의 모습 등 토목과 수리 측면에서의 탐구 ▲대간선수로의 기능과 역할, 특히 식량자급 또는 풍년 농사를 위한 거대하고 체계화된 수리시스템에 대한 접근 ▲대간선수로가 통과하거나 지나가는 인근의 도시와 마을들에 관한 이야기 ▲대간선수로의 창조적 미래, 문화적 활용 가능성 등에 대한 탐구 등을 전하려 한다.<편집자주>

최근 들어 대간선수로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있습니다. 대간선수로가 지나는 완주와 익산의 시민활동가들에 의해 조명이 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군산에서도 익숙한 이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필자를 포함하여 군산시민들에게는 ‘대간선수로’ 자체가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토박이들에게 물어봐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름조차 생소했던 대간선수로가 시민활동가들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대간선수로는 만경강 유역의 수원지인 대아저수지로부터 시작하여 약 65키로미터를 흘러 종착지인 옥구저수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대간선수로를 통해 한 라인으로 단일 수리체계가 된 것이죠. 대부분의 구간이 U자형 인공수로의 모습이지만 1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일부 구간은 자연형 하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수로의 폭도 다양함을 보셨을 겁니다. 1923년에 대간선수로와 함께 만들어진 탱크형 저수지로서 이전에는 마산 방죽이라고도 불렸던 옥구저수지는 제방을 흙으로 축조해 만든 저수지로 높이 4미터, 둘레 약 6.1키로미터 규모이며 면적은 거의 100만 평에 가깝습니다. 

군산은 예로부터 ‘물의 고장’이라 불렸는데요. 1908년에는 농토에 물을 대기 위한 시설을 하고자 ‘옥구서부수리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농어촌공사의 효시입니다. 농민들이 주도하여 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조합인데요. 만경강 유역의 해안 말단부에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조합 설치가 가능했던 것은 이미 농사용 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지역은 미제(米堤)와 선제(船堤) 두 저수지를 농업용수로 삼아 농사를 지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미제라 불렸던 현재의 은파저수지에는 2008년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념탑을 세웠습니다.

 

1899년에 개항한 군산은 주변 일대에 간석지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는 지형적 특성으로 간석지의 매립과 간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습니다. 문헌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간척의 기원은 고려시대인데요. 몽고군의 침입을 피하여 강화로 천도(1232년)한 뒤, 해상 방어 목적으로 연안 제방을 구축한 것이 간척의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군산’ 하면 새만금방조제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 이전에도 당시로서는 거대한 간척사업이 있었는데요. 1920년부터 1923년에 걸쳐 만들어진 ‘불이 간척지’ 조성 사업입니다. 불이 간척지는 일명 ‘조선의 수리왕’이라 불렸던 후지이 간타로의 불이흥업주식회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간척지입니다. 간척사업을 통해 총 550만 평 규모로 만들어진 농토 중 옥구저수지를 경계로 남쪽의 250만 평은 한국인들이 소작하도록 하였고, 북쪽의 300만 평은 일본인을 이주시켜 경작하도록 하였는데, 일본인이 경작했던 장소에는 ‘불이농촌’이라는 일본인 농업이민 촌락이 자리했습니다. 소설가 조정래의 ‘아리랑’에 나오는 간척 농지 이야기가 바로 이곳 ‘불이농촌’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많은 간척지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대간선수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만경평야의 농경지 대부분은 일본 구주지역에서 건너온 일본인 지주의 것이었는데 구마모토농장이니 미야자키농장 등의 명칭도 구주지역의 명칭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불이농촌에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는데요. ‘열대자 마을’입니다. 그 유래는 당시 이 마을에서 촌락과 촌락을 연결하는 농로의 폭이 15자 즉 열댓 자(尺)가 된다고 하여 열대자로 불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폭이 4.5m 정도가 되는 널찍한 도로였던 것이죠. 현재의 열대자 마을은 옥성·신창·금성·평화 마을 등 4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곳 옥구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이완용 둑’이라 부르는 장소가 있는데요, 지금의 오봉마을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지금도 일부는 남아있습니다. 만경강 하구 일대의 새만금 지구 내 첫 간척시행자가 이완용이었다는 사실. 당시 이완용은 전라북도 관찰사를 지냈고 일대의 땅을 이완용이 소유하고 있던 곳이어서 ‘이완용 둑’이라 불린 것으로 보입니다. 미리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사전에 많은 토지를 매입하고 이를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한 것이었죠.

군산지역을 흐르는 대간선수로는 과거의 전군가도(지금의 번영로)를 따라 흐르는 코스가 많아 시민들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현재 대부분의 시민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수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수로 주변으로는 군산 유일의 재래 5일장인 대야전통시장도 있고, 군산지역 최대 지주였던 구마모토농장에서 의료활동을 했던 한국의 슈바이처 쌍천 이영춘가옥,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발산리5층석탑, 한국전쟁 당시 우익인사를 구금했던 장소였고 건물 자체가 금고인 시마타니금고, 1936년경 건립되어 일제 수탈 현장의 역사를 간직한 국가등록문화재 임피역사 등 군산의 다양한 문화재가 자리하고 있어 대간선수로 주변은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또 단차가 거의 없는 수로구간이라 걷기에 편하고 자전거를 이용한 하이킹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한데요, 대간선수로와 함께 수변구역을 활용하는 계획을 세운다면 군산의 또 다른 명소가 될 것입니다.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선 침략 역사는 오래되지 않은 과거입니다. 일제의 식민 통치를 경험했던 세대가 같은 시대 안에서 호흡하고 있으니 ‘동시대’ 역사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 역사의 기록은 미미하고 관심도 멀어져만 갑니다. 지금까지 연재된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간선수로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노선, 지역별 이야기, 향후 활용계획 등 다양한 내용들이 집필자들에 의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대간선수로의 역사를 기억하고 가치를 재조명하여야 함은 물론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는 일이 절실해 보이는 시점입니다.

김태휘 작가 dosa209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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