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완주-전주 통합에 대한 제언(2)–지금 필요한 것은?

  • 등록 2025.09.18 10: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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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신문]사상 초유의 불법 계엄 내란 사태를 극복하고 국민주권 정부가 출범한 지 백일을 맞고 있다. 새정부의 국정 기조에 조응하는 지역발전 전략을 추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우리 전북 도정은 완주·전주 통합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늪에 빠져 있으니 안타깝다.

 

필자는 행정안전부에서 자치분권정책관을 맡아서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업무를 담당했었다.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로서 지난해 1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실무적으로 총괄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완주-전주 통합문제를 살펴보고 완주와 전주의 진정한 상생 협력을 위한 제언을 하려 한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정리해 본다.

 

완주·전주 통합 논의가 지난봄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해서 벌써 여러달째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지역사회는 피로감에 짓눌리고 있다. 통합을 둘러싼 갈등은 장터와 마을회관은 물론 일터에까지 번져나가며 공동체의 균열을 깊게 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 중요한 시기에 전북특별자치도와 전주시, 완주군의 행정력이 소모적인 완주·전주 통합 논란에 매몰되어 있다. 도민들의 삶을 보살피고 더 큰 전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행정이 갈등과 소모전에 발목이 잡혀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여러차례 진행된 여론조사의 결과는 완주군민의 절대 다수가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도 주민의 충분한 동의 없이는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더구나 통합 절차를 완성하려면 주민투표와 특별법 제정, 법적·행정적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내년 6월 3일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 일정을 감안하면 내년 7월 완주·전주 통합시 출범은 물리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현 도지사와 전주시장의 임기 내에 통합을 성사시키겠다는 구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주민투표는 정해진 행정절차일 뿐이고 이를 통해 완주군민의 의사를 확인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수십억원의 투표 비용과 행정력 낭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주민투표가 마을과 직장, 가족과 이웃까지 찬반으로 갈라지게 하고 서로의 불신과 대립을 격화시켜 결국 지역공동체를 파괴시킨다는 점이다. 게다가 결과가 어떻든 불복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상처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주민투표는 해법이 아니고 또 다른 혼란을 낳는 위험한 선택일 뿐이다.

 

이제 완주·전주 통합 추진 여부에 대해 결단할 때가 됐다. 전북도, 전주시, 완주군이 참여하는 국장급협의체를 즉시 가동하여 완주·전주 통합의 질서있는 마무리 방안, 완주공동체 갈등 치유방안, 완주와 전주의 상생협력 방안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통합 추진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더 늦기 전에 완주·전주 통합 추진과정에서 완주 군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갈라진 완주군민들의 화합과 전주-완주 상생협력 방안을 밝히는 것이 참된 리더십이고 진짜 용기있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그것이 행정이 주민의 뜻을 존중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도지사와 전주시장이 정치적 계산으로 완주·전주 통합을 추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순수한 지역발전의 염원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멈출 줄 아는 용기다. 공자는 “지과필개(知過必改),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했다. 주민 뜻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큰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멈추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완주와 전주는 이미 생활·경제·문화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다. 어쩌면 ‘공동운명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행정구역을 억지로 합치지 않아도 교통망 확충, 산업단지 공동개발, 만경강 수변 공동개발, 문화·복지 인프라 공유 등 상생과 협력의 길은 무궁무진하다. 진정한 발전은 통합이라는 형식에 있지 않다. 서로의 정체성과 자치를 존중하면 상생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이제 도지사와 전주시장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집념이나 추진력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와 치유를 위한 노력,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주민 뜻을 존중하는 지과필개의 자세, 그리고 용기와 어짊을 품은 지도자의 길만이 상처받은 지역사회를 치유하고, 전북의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임상규 전 전북자치도 행정부지사 dosa209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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