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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정체성 찾기13]견훤이 창건한 후백제 사찰 ‘봉림사’

봉림사(鳳林寺)를 아십니까?
고산면 삼기리에 후백제시대 절터가 있다. 봉림사는 주민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전해질 뿐 지방지나 사찰지 등 어떤 고문헌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절이었다. 베일에 싸여 있던 봉림사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61년 당시 삼기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이승철 선생님이 5학년 아이들과 향토 연구를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석불 2점과 석조물 2점을 발견해 언론에 제보하면서였다. 이후 1975년 12월 전북대학교 박물관은 전주와 완주 지역의 문화재 조사를 해 『전주·완주지역 문화재조사보고서』를 발간하며 봉림사지에 삼존불, 5층 석탑, 석등이 있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봉림사지에 해체되어 산재하던 삼존불은 삼기초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학교 정원으로 옮겨 교육 자료로 활용하다 1977년 5월 전북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5층 석탑과 석등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시마타니가 소달구지를 이용해 자신의 농장사무실이 있는 옥구군 개정면(현재 발산초등학교)으로 옮겨갔다. 봉림사지가 출처인 또 다른 5층 석탑은 익산시 남중동 이리여고 운동장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석탑은 백제기법의 고려시대의 탑이라는 평가를 받고 익산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24년 이리여고가 개교할 때 봉림사지에서 옮겨 갔다고 한다.

 

봉림사지는 기록은 없지만 구전되는 이야기가 유물을 통해 증명된 사례로 전북대학교 박물관이 세번에 걸쳐 조사를 하였다. 조사결과 봉림사는 후백제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사찰로 전북지역 최초의 후백제 사찰일 것으로 추정된다. 근거는 출토된 자기류와 기와가 통일신라 말 고려 초기의 형식이며, 현재 전북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봉림사지 삼존 석불의 조성 시기가 10세기 전후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발산리 석등과 석탑의 조성 연대와도 일치하기에 아마도 후백제 견훤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완주가 고향인 대한민국 보물들
완주를 떠나 군산시 개정동 발산초등학교에 있는 석등과 5층 석탑은 각각 대한민국 보물 제234호와 제276호이다. 보물 234호인 석등은 가운데 기둥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구름 속을 날아가는 용을 새겨 놓았다. 이런 형태는 다른 곳에서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딱 하나 밖에 없는 보물이다. 전북대학교 봉림사지 발굴 조사팀은 2017년 조사보고서에서 발산리에 있는 석등이 현재 전북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석등 대석과 세트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보물 제276호인 석탑은 신라 탑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 석탑으로 고려 탑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전북지역 석탑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탑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봉림사지 발굴조사 결과 이 탑은 후백제의 교통로를 비보하기 위해 봉림사에 건축된 것으로 밝혀져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석등과 석탑의 이름이 현재 발신리 석등과 발산리 5층 석탑으로 되어 있는데 이들의 고향이 봉림사지이니 봉림사지 석등과 봉림사지 5층 석탑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익산시 향토문화재 12호인 남중동 5층 석탑 역시 봉림사지에서 반출되었기에 봉림사지 5층석탑이라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보통 신라의 사찰에는 하나의 금당에 2개의 석탑이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발산리 5층 석탑과 남중동 5층 석탑이 같은 시기에 조성되어 나란히 서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봉림사지에서 반출된 2개의 5층 석탑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전북대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삼존석불은 아담하면서도 균형 잡힌 9세기 후반의 불상 양식으로, 세부 형식에서는 안동 지역, 팔공산 지역, 문경 지역의 독특한 형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경북 상주가 견훤의 출생지이며 팔공산에서는 고려 태조 왕건과 큰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경북지역 불교 미술품의 특성이 봉림사지 삼존불에 나타나게 된 것으로 추측한다.

 

 

후백제를 주제로 한 유적지
봉림사지 석탑과 석등, 불상은 후백제 불교미술의 존재와 그 예술성을 세상에 알렸다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견훤의 고향인 상주로 가는 길목에 봉림사지가 있어서 경상도 지역과의 교류가 빈번하였음을 알게 한다. 전주 동고산성에서 시작한 교통로가 봉림사와 요동마을 용계재를 거쳐 탄현을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용계산성을 견훤이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견훤과 관련이 있는 지역을 연결하여 옛 후백제의 교통로를 복원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봉림사지 발굴조사팀은 석불, 석등, 석탑이 어디에 있었는지 위치를 특정하였다.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가능하다면 봉림사지를 복원하여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물을 원래의 자리로 가지고 와야 한다. 유물의 체계적인 보존과 후백제에 대한 연구,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을 위해서 고향을 떠나 있는 유물들이 완주로 돌아오길 희망한다. 봉림사지가 복원되고 후백제의 옛길을 둘레길로 만든다면 전국에서 유일한 후백제 유적지가 될 것이다. 후백제를 주제로 유일하고 특별한 완주관광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