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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일상]이웃

[완주신문]오래전에 휴지조각 하나 없는 깨끗한 복도에 내 앞으로 걸어 나오는 옆집 학생이 칵 하고 가래침을 목도에 내뱉는데 나도 모르게 ‘야 임마’하고 호통을 치고 보니 그 학생 쳐다보기가 민망했다. 내 얼굴에다 가래침을 내뱉는 것 같아 엉겹결에 나온 말이다. 조용히 타일렀거나 못 본채 했을 걸 하는 후회와 함께 계면쩍어지는 아침이 되고 말았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목구멍을 헤집는 담배 냄새가 숨이 막힌다. 버스승강장을 향하는데 중년의 남성이 담배 연기로 산뜻한 아침공기를 희석시킨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못다 마신 커피 잔과 삼분의 일도 못 태운 담배 꽁치와 휴지조각과 얼룩무늬 침 자국은 한 폭의 모자이크 그림이 되는 승강장이다.

 

모임 때마다 어김없이 집 앞에 차를 대는 회원의 전화를 받고, 고맙다며 나가보면 어김없이 담배를 물고 있다. 차문을 열면 굴뚝 냄새가 숨이 막히고 십여분 거리의 중간에도 불을 붙이고 도착하기가 무섭게 담배를 또 입에 물어도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어 고민도 함께 동승이 되는 셈이다. 

 

80년대 영등포 한 예식장 로비에서 제비 같은 미모의 젊은 여인이 구름 밟듯 걸어와 내 앞 의자에 앉더니 핸드백을 열며 스스럼없이 담배를 꺼내더니 주위에 하객들을 인식한 듯 담배가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도로 넣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간절했으면 주위도 의식 못했을까 딱한 생각은 아침안개를 헤치는 선녀 같아 보였다.

 

80평생 단 한번도 담배를 피워보지도 못한 나로선 애연가들의 간절한 마음을 다 이해하진 못해도 담배가 없으면 무슨 낙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꿀맛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때와 장소쯤은 가릴 줄 알아야 영장의 사람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인 것이다. 

 

자기가 좋다고 자제할 줄 모르고 양보할 줄 모른다면 야생의 세계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어도 양보하면 반드시 어느 때에는 자기에게도 되돌아오는 게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세상만사가 자기 입장에서는 자기가 옳고 상대방이 잘못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상대방의 행동과 주장이 옳은 부분이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역지사지가 필요한 것이다.

 

담배가 그렇게 달콤해도 다른 사람에겐 독가스라는 것을 자기 가족을 아끼는 마음에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은 위층 집에 굴뚝을 들이대는 격이라는 것을 아래층에서 시 때 없이 담배연기가 올라와 창문도 열 수도 없다는 것을. 담배연기가 산뜻한 아침공기도 최루탄 가스로 바꾼다는 것을 무심코 버리는 담배꽁초가 푸르른 산하를 잿더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래침이나 휴지조각 하나도 세상의 질서와 행복이 직결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칠 수는 없는 세상 이웃과 손잡아 사회가 되고 사회가 있어 국가가 있고 나라가 없는 백성은 천덕꾸러기 난민에 불과한 것이다. 손해 보다는 생각이 들어도 배려한다는 생각을 하면 모두가 다 이웃이고 친구이고 꽃피는 세상일 것이다.